[알렉스 한의 재정계획] K 할머니의 쌈짓돈
얼마전 타운에서 조그만 장례식이 열렸다. 85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소천한 K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고인은 45세의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고 혼자 몸으로 장사를 하며 5남매를 키워냈다. 3명의 아들 가운데 2명은 의사 한명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고 딸들도 좋은 집에 시집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복한 집안이다. 지금이야 남들로부터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부러움을 받을 정도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 K씨의 고생담은 절절하기 그지없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온 고인은 평소에도 철저한 근검절약 정신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쌀 한톨 양말 한짝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스스로는 헌옷을 기워서 입을 망정 자식들 만큼은 새옷을 사서 입혔다. '어디 바깥에 나가서 혹시라도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하기 싫어서 남들보다 더 깨끗하게 키웠다'는 것이 고인이 평소 자녀들에게 하는 얘기였다고 한다. 고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 자녀들은 유품에서 서류봉투 속에 고히 간직해 둔 생명보험 증서를 찾아냈다. 자녀들로부터 받았던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꼬박꼬박 부어온 20만달러의 생명보험이었다. 100만달러가 넘는 고급주택에 살고 있는 자녀들의 생활규모에 비하면 이 돈이 결코 많지 않아 보이지만 자녀들의 피부에 와 닿는 돈의 가치는 200만달러 아니 2000만 달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 자녀들은 보험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자신들을 훌륭하게 키워준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한 것이다. K할머니의 얘기는 결코 드물지 않은 우리 부모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건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점철된 윗세대들의 헌신이 오늘날의 한인사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얼마전 칼럼에서 '끼인 세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현재 40~50대의 한인들이 바로 이 세대에 속한다.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자식들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약간은 억울한 세대가 바로 끼인 세대이다. 부모세대에서는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이 곧 노후 대책의 하나로 여겨졌지만 끼인 세대들은 자식을 잘 키워도 노후대책은 자신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보험적인 측면에서도 이 세대는 끼인 세대가 분명하다. 지금 40~50대의 한인들은 부모들이 K할머니처럼 생명보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고 갖고 있다고 해도 10만달러 안팎의 적은 액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끼인 세대들은 부모들이 생명보험없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 생명보험 가입이 결코 일반적인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험이 있어서 보험혜택이 있다면 고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혀 섭섭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지금 30대 미만의 젊은층은 훗날 부모가 돌아가신 뒤 보험금을 받는 것이 유태인 사회처럼 자연스런 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물론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생명보험 가입이 더욱 보편화되면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부모들은 다 생명보험이 있는 데 왜 우리 부모만 보험 하나도 안 가입했을까'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어쨌든 이 또한 끼인 세대들에게는 억울한 일임이 분명하다. ▷문의:(213)503-6565